소요




길고 긴 밤의 짧은 이야기

1. 밤의 아이

너는 밤의 아이 같아, 그건 언제 들었던 말이더라? 마사루가 나에게 너는 밤의 아이 같아 했고 나는 그의 목소리가 안 들려서 다시 한 번 되물었어. 응? 너는 밤의 아이 같다고, 응. 그게 무슨 말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치만 나는 다시 묻지 않았고. 응. 나는 밤의 아이 같아?

내가 밤이면 너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런 걸까? 어제 꾼 꿈 얘기를 계속해서 그런 거야? 꿈에 네가 나왔고 너는 내가 아는 얼굴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 얘기를 계속한 건데 그래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춥고 긴 밤마다 너의 방 앞에서 서성여서 그런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새로 산 렌즈가 푸른색이라 그런 걸까? 푸른 렌즈는 밤이면 더 반짝이고 또렷해 보여서? 그러니까 나의 눈이 푸른색이 되어서? 

마사루. 나는 밤의 아이 같아? 나는 밤의 아이야? 응. 너는 밤의 아이야. 나는 말의 뜻은 모른 채로 마사루와 계속 걸었고 우리는 산책을 하며 일어나고 벌어지는 일들을 구경했다. 예를 들자면 저기 저 간판을 봐. 입안에 행복치과.

2. 밤의 외투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나의 방에는 여전히 널브러진 옷가지들과 책들과 영수증들이 있고, 그런 방을 뒤로한 채 나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마사루를 만나러 간다. 마사루도 나와 비슷한 차림이겠지. 날씨가 춥고 밤이 길고 마사루도 나도 너도 여러분도 다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다. 나는 두꺼운 외투 위에 목도리를 둘렀고 목도리는 너무 길어서 두 번을 두르고 묶어도 한참이 남는다. 마사루는 두꺼운 외투에 장갑을 꼈고 장갑의 엄지손가락에 구멍이 나 있다. 너는 그리고 여러분은 두꺼운 외투에 무엇을 추가할까요?

3. 밤의 산책과 영화

나는 여전히 밤의 아이 같은 것이 무엇일지, 너는 밤의 아이야 라는 말이 무슨 뜻일지 생각하며 마사루와 걷고 있다. 날은 춥고 밤은 길고 두꺼운 외투가 바람을 막아주지만 여전히 춥다. 만약 마사루가 나에게 겨울의 아이같다고 했다면 나는 아마 금방 그 의미를 알아차렸겠지. 그건 눈사람 같다는 뜻이다. 너는 겨울의 아이 같아. 너는 눈사람 같아. 나는 눈사람 같다. 근데 나는 밤의 아이야?

영화 시작한다. 앞에 봐.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밤의 아이가 무엇일지 생각하느라 그리고 마사루의 옆모습을, 마사루의 콧날을 몰래 살피느라 바빴다. 너의 콧날은 날카롭구나. 너는 날카로운 옆모습을 가졌구나.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밖은 어두웠다. 컴컴하다, 응, 밤이야, 걸을까? 영화관에서 나와서 목도리를 다시 두르고 너는 장갑을 끼고. 아까보다 더 추워졌어, 그러게, 장갑을 줄까? 그럼 나는 목도리를 줄까? 마사루의 두꺼운 외투 위에 목도리를 둘러주는 상상. 목도리는 길고 부드럽다. 한 번 두르고 묶어도 여전히 남아.

4. 밤의 공간

마사루와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마사루는 201호에 머문다. 우리가 여기서 지낸 지도 두 달이 되었네. 나는 아직도 춥고 긴 밤이면 201호 앞을 서성이고 귀가 밝은 너는 금세 문을 열어주고 침대를 내어주고 너는 작은 소파에서 잠이 들어. 오늘도 그러겠지. 오늘은 춥고 긴 밤이고 우리는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로 걸었고 영화를 봤고 나는 너의 옆모습을 구경했고 너의 장갑은 구멍이 나 있다. 네가 소파에서 잠이 들면 나는 너의 옆모습을, 너의 콧날을 영화관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천천히 구경하며 잠에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