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나는 살던 곳을 떠나왔다. 대학 시절 동기들은 모두 임용고시를 보고 선생님이 되었고, 몇 번의 휴학으로 졸업이 늦어졌던 나는 이내 늦을세라 임용고시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한 번을 떨어지고 2년 차 고시생이 되어 독서실에 틀어박혀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합격해도 별로 기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과연 이게 맞나, 나는 늘 전 세계를 떠돌며 살고 싶어 하지 않았나, 공무원이라는 것은 제일 한 곳에 발 묶여 살기 딱 좋은 직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 번 떠오른 생각은 이내 온통 머릿속을 잠식했고, 그런 생각이 떠오른 지 딱 일주일 만에 나는 고시 공부를 그만두고 비행기를 탔다. 공부한 게 아깝지도 않냐는 동기들의 물음을 뒤로한 채 모두가 선망하는 가장 안정적인 길을 버리고 자유롭고 불안정한 길로 나는 무턱대고 나아갔던 것이다.
세계를 떠돌며 사는 삶은 쉽지 않았다. 나는 여행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떠돌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보다 외국인에게 각박했다. 외국인으로서 아무 연고 없는 땅에, 돈을 바치며 하는 공부나 여행이 아닌 그 나라의 돈을 도리어 가져가는 직장 비자를 얻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내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워킹홀리데이나 숙식과 아주 약간의 체류비를 제공하는 자원봉사 형태의 일자리였고, 그런 자리들은 대개 정해진 기간이 있었다. 나는 그런 자리들 중 내가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일(대부분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을 전전하며 이 나라에서 3개월, 저 나라에서 1년, 또 다른 나라에서 9개월 등을 살며 7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냈다.
친구들은 내게 멋지게 산다느니 부럽다느니 하는 말을 했지만 아무도 그 ‘멋진’ 삶을 감히 따라 하지는 못했다. 그런 삶에는 감당해야 할 어마어마한 무언가가 따라온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일 테다. 그것들을 감당해야겠다는 각오 없이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무언가에 <이별>이 포함되리라는 것은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그리고 가장 감당하기 힘들었던 사실이었다.
언젠가 그 지역에 토박이로 살아온 동료가 그런 삶이 힘들지는 않으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
“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는데요, 그런 삶이 좋긴 하지만, 음, 음, 이별이 너무 잦은 건, 좀, 힘들더라고요.”
계속 생각해 오던 마음을 일터라는 서로 간의 거리가 어느 정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만난 이에게 털어놓던 나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단어 한 마디 한 마디 사이에 뜸을 들이며 말하던 떨리던 나의 목소리를, 그 장면을, 마치 영화 속 모르는 배우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듯이 나는 기억한다.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언젠가는 애인이라 명명하며 사랑 비슷한 것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 롱디는 아무래도 너무 힘들다며 이별을 통보받기를 몇 번, 어딘가에서 꼭 다시 만나자며 헤어진 친구들과는 그 누구와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일을 하며 만났던 아이들도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끝내 알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별을 거듭하고 그중 어떤 것에도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나는, 이 낯설고 무더운 땅 탄자니아에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계약 기간이 종료된 유럽의 네덜란드를 떠나, 아직 계약 기간이 시작되지 않은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아직 풀지 못한 짐이 아득히 쌓인 조그마한 방 한 칸에서, 또 한 번의 이별을 거듭해야 했던 사람들과 공간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또 한 번의 만남과 이별을 해내야 할 사람들과 공간으로 향해가며.
어릴 적 나는 크리스마스라면 모름지기 특별한 사람들과 특별하게 보내야만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매년 크리스마스 날 아침 오늘은 어디에 가냐고 부모에게 물었고, 그러면 언제나처럼 교회에 가는 것 말고는 딱히 아무 계획도 없었던 그들은 조금은 난처하고 조금은 짜증이 묻은 얼굴로 망설이다가, 결국은 동네 눈썰매장이나 영화관에 가곤 했었다. 그랬던 나에게 이런 크리스마스는 특별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전혀 특별하지 않다고 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나는 살던 땅에 계속해서 발붙이고 살아가는 얼굴 모를 수많은 이들에게 묻는다.
나의 이별은 당신의 머무름보다 아름다운가요.